상단 새랑전에는 막돼먹은 노비 모달이 살고 있다.
아씨와 문 앞에서 마주치더라도 먼저 비켜서는 법이 없는 희한한 노비.
비키라 면박을 주면 무심히 제 할 말 다 한다.
“내가 안 비켰냐?”
한 평생 인사하는 법이 없어 혼을 내도 역시 마찬가지.
“뭘 어쩌라고 아침부터 난리야?”
주인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노비 때문에
아씨와 모달은 철천지 원수 사이.
문제는 집주인 아씨가 노비를 짝사랑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.
상단 새랑전에는 도도한 아씨가 살고 있다.
하필이면 마음 준 상대가 천한 노비라서 홀로 가슴앓이한 지 팔 년째.
“예전처럼 무시해도 뭐라 말 안 할게. 상전 대접 안 해줘도 화내지 않을게.
애초에 그런 거 바라지 않았어. 너도 알잖아. 나는 오직 너만 봐왔다는 것을.
노비라도 네가 좋았단 말이야. 산백정 같은 모달이 그냥 좋았단 말이야.
천자라는 거 나한텐 아무 의미 없어.
그런 거 나는 근간에 안 것을, 이제 와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?”
노비의 진짜 신분을 알고 또다시 짝사랑의 길을 가야 하는 아씨의 마음.
뒤바뀐 신분의 격차 속에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된다.
저자 : 이윤주
나무를 심는다. 숲을 만든다. 청림의 주인이 돼서 세상 속에서 영원히 푸르르고자 한다.
출간작
『정지된 것들』
출간 예정작
『AN ITEM』
『윤조』
『저녁으로 가는 시간』